2008년 8월 2일 토요일

보이차 이야기 18

살청(殺靑)은 몇 번 할까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 이야기18 정보화사회의 허식③

일반인들이 가장 많은 혼란을 느끼는 용어가 바로 ‘살청(殺靑)’이라는 것이다.

차나무의 신선한 찻잎을 가리켜 선엽(鮮葉)이라고 한다. 찻잎을 차나무에서 채취하는 순간 선엽은 산화효소에 의해 산화되기 시작한다. 산화효소의 활성을 잃게 하는 동시에 산화의 진행을 정지시킬 수 있는 방법은 가공을 통해 단시간 내에 선엽의 온도를 80℃ 이상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이 작업을 학문적으로 ‘살청’이라고 한다.

녹차를 처음 덖을 때 즉 1차 덖음에서 왜 솥의 온도가 뜨거워야 하는 지에 대한 해답을 바로 살청이라는 화학반응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 선엽의 산화효소는 열에 의해 일으키는 변성온도(變性溫度)가 80℃다. 이는 곧 ‘살청’을 하는데 있어 선엽의 온도 즉 엽온(葉溫)을 최저 80℃ 이상으로 잡아야만 단시간 내에 산화효소의 활성을 잃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제대로 된 살청은 한번이면 그 효과를 이루어낼 수 있다. 녹차의 살청은 최초의 덖음 즉 고온을 통한 첫 번째 덖음이 살청공정이며 이후 행하는 저온을 통한 덖음은 횟수와 관계없이 모두 건조공정에 해당된다.

차의 분류에 있어 살청의 유무 또는 살청을 언제 하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발효(산화)를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 첫 번째 가공공정을 살청으로 택한 것이 녹차며 이를 비발효차(非醱酵茶)라고 한다. 반발효차(半醱酵茶)로 불리는 오룡차는 일정한 발효를 거친 선엽을 살청공정을 가해 산화를 중지시켜 만든 차를 말하며, 우리가 흔히 보는 15%~60%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바로 선엽을 몇 퍼센트의 발효상태에서 살청을 했느냐를 알려주는 것이다. 오룡차 중의 경발효차(輕醱酵茶), 중발효차(中醱酵茶), 중발효차(重醱酵茶)라는 용어가 바로 이러한 논거에 따라 붙여진 용어다. 완전한 발효를 통해 맛을 내는 홍차는 산화효소의 도움이 절대적이기에 살청공정을 행하지 않으며, 때문에 홍차를 완전발효차라고 한다.

그럼 선엽의 산화효소를 중지시키는 살청공정에는 몇 가지 방식이 있을까? 대체로 살청의 방식은 덖어서 하는 것과 증기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증기를 통한 살청방식은 주로 녹차에 적용되는 반면 덖음 방식의 살청은 모든 종류의 차에 이용되고 있다. 덖음 방식의 살청에는 솥에서 덖는 수제식과 로울링 방식인 기계식이 있다.

살청을 증기방식을 통해 만든 녹차를 증청녹차(蒸靑綠茶)라고 부르는 반면 살청을 덖음 방식을 통해 만든 녹차는 건조방법에 따라 이름 또한 달리한다. 예를 들어 살청과 건조의 공정을 모두 솥에서 행한 것은 ‘초청녹차(炒靑綠茶)’라 하며, 건조공정만을 기계를 통해 말린 것을 ‘홍청녹차(烘靑綠茶)’ 그리고 햇볕을 통해 건조한 것을 ‘쇄청녹차(쇄靑綠茶)’라고 부른다.

필자가 강의를 통해 이러한 질문을 여러 번한 적이 있다. “녹차의 가공법에서 살청은 몇 차례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대체로 3번 혹은 4번 또는 9번이라는 답들이 많았다. 9번이란 답은 아마 구증구포(九蒸九曝)라는 녹차가공법에서 비롯된 발상일 것이다.

차의 가공법에서 살청의 공정은 단 한번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한 답들이 생겨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원인은 우리말의 가공용어에서 그 해답을 찾아 볼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녹차를 덖음차 또는 볶음차라고 한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살청과 덖음을 같은 공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즉 녹차를 3번 덖었다는 것을 살청을 3번 했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얘기다.

“보이차는 살청을 한 번하고 우리의 작설차는 구증구포로 하니 작설이 보이차보다 좋다”는 말이 인터넷에서 정보로 떠돌고 있다. 보이차와 작설차의 우열을 덖음의 회수로 단순 비교하는 잣대는 살청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허식(虛識)이다. 이러한 정보의 오류는 보이차에 대한 지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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