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3일 목요일

차야시 호야시

차야시(茶也是) 호야시(壺也是)
나는 온전한 차인(茶人)도 온전한 차상(茶商)도 못되는 반쪽짜리 짝퉁이지만,
어차피 한 발씩 걸치고 살아가니 주제넘지만 허튼소릴 좀 늘어놓겠습니다.

1. 차야시(茶也是)

茶는 참으로 좋은 물건이다.
차는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고, 건강에 이로울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차를 발견한 후 3.000여년 음용해 오는 동안
차에는 수많은 선인(先人)들의 지혜가 담겨져 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차 맛과 향에만 너무 탐착하여
차의 참맛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차인(茶人) 가운데 존경할 만한 분들도 많지만,
차인이라 자처하는 일부사람들 가운데는
자랑삼아 다력(茶歷)을 내세우는 것을 가끔 본다.
어느 잡지에서 차인 *** (차력 **년)이라고 소개된 것을 보았다.
(뭔 차력? 힘 좀 쓰는 사람인가.......?)
군에서 군 생활도 지지리도 못하는 고참이 쫄병들 앞에서만
짠밥 그릇 수를 내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한 잔을 마셔도 차 맛을 알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평생을 마셔도 차 맛을 모를 것이다.
마치 평생 밥을 나르는 수저가 밥맛을 모르는 것처럼.......

차상(茶商)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차상들의 고질병 가운데 하나가 남의 물건을 인정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보이차를 예로 들면:
내 보이차가 습이 먹었으면, 이건 자연습(自然濕)이라서 별 문제없지만,
남의 보이차가 습이 먹었으며, 그건 습창차(濕廠茶)라서 못 마실 차라고 말한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법이다.

말 많은 보이차,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보이차는 좋은 차이며 죄가 없다.
차를 다루는 사람의 문제 일뿐이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는 법이다.

요즘 보이차가 대중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남의나라 땅에서 나는 물건이라서,
일반 소비자들은 아직도 보이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전문가들은 너무 집착하거나 신비화하려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보이차도 그 져 여러 차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보이차는:
노차(老茶)가 제대로 된 보이차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귀하고 비싼 차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되겠는가?

보이 노차(老茶)를 마시는 입맛에는
요즘 만든 보이 신차(新茶)는 차 같지 않을 것이다.
보이 숙차(熟茶)를 마시는 입맛에는
생차(生茶)는 익지 않아서 차 같지 않을 것이다.
보이 생차(生茶)를 마시는 입맛에는
숙차는 탁해서 차 같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고집하면 마실만한 차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생각 돌이켜보면:
숙차(熟茶)는 가격도 저렴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니
일정기간 거풍해서 숙미(熟味)가 사라지면
바로 마셔도 좋을 것이다.
생차(生茶)는 바로 마셔도 마실 만하지만,
아직 익지 않은 생차이니 잘 숙성해서
익혀 마시면 될 것이다.

보이차 가격은:
숙성년도, 보관상태, 사용한 찻잎의
품질이 각기 다르니 가격 또한 천차만별이다.
또한 구입량이나 판매하는 장소에 따라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물건이 귀하면 값이 오르고
물건이 흔하면 값이 내리게 될 것이다.
누구나 좋은 차를 싸게 사고 싶을 것이나,
너무 싼 차를 고르다 보면 품질이 떨어지는 차를 살 수 수밖에 없다.
우리 속담에도 “싼 것이 비지떡이다”라는 속담이 있고,
중국 사람들도 “일분전 일분화”(一分錢 一分貨:그 돈에 그 물건)”이라고 말한다.

어떤 보이차가 좋은 차인가?
제 입맛에 맞는 차가 좋은 차이겠지만.......
좀 더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1. 봄 차가 좋다.
교목(喬木)이든 관목(灌木)이든 야생차든 재배차든 간에
제 철에 나는 찻잎으로 만들어야 좋은 차이다.
2.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보이 생차는 후 발효 과정을 거쳐서 완성이 되는 미완의 차이다.
그러므로 후 발효가 긍정적으로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통 보이차 제다법인 쇄청모차(曬靑毛茶: 햇볕에 말린차)로 만들어야한다.
일부 석모(石模)로 긴압(緊壓)한 차를 수제차(手製茶)라고 하는데,
채엽(採葉)~긴압(緊壓)까지 전 과정을 수공(手工)으로 만든 차가 수제차이다.

3. 잘 보관해야 한다.
보이차는 오랜 세월 후 발효 과정을 거쳐서 완성되는 차이므로
보관조건이 매우 중요하다.
고의로 과속(過速)한 습창(濕廠) 민창(悶廠)한 차는 퇴출되어야 한다.
건창(乾廠)으로 보관한 차가 좋은 차다.
중국의 광동은 너무 습하고, 북경은 너무 건조하고,
한국이 보이차 보관하기에 좋은 지역이다.


2. 호야시(壺也是)

자사호(紫砂壺) 역시 차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보이차와 마찬가지로 말도 많고 탈이 많은 것 같다.
각 시대의 제다법(製茶法)과 음다법(飮茶法)에 따라서
사용하는 다구(茶具)도 변화 발전해 왔다.
과거 중국 차 문화를 보면 자사호가 널리 보급되는 데는
명대(明代)의 산차(散茶:잎차)와 청대의 오룡차(烏龍茶)가 깊은 연관이 있다.
차에 따라 제다방법이 다르고 우리는 방법이 다를 뿐 아니라
사용하는 다구 또한 달라야하는데, 요즘 한국에서는 중국차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차에 관계없이 자사호를 사용하여 포다법(泡茶法)으로 차를 우리고 있다.
자사호는 고온으로 우리는 잎차를 우리는데 적합한 차호이다.
보이 생차는 자사 차호로 우리는 것이 좋고,
흑차(黑茶)류, 보이 노차, 숙차는 자사 자호를 사용해도 좋으나
탕관에 끓여 마시는 것이 더욱 좋다.

자사호를 만드는 자사 니료(泥料)는
중국 의흥의 정산(丁山)에서만 나는 귀한 광물질이다.
갈수록 양질의 원료는 고갈되어가고, 자사 차호 수요량은 늘다보니
품질이 좋은 자사 차호는 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고,
저질의 자사 차호가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갈 명상 선생의 “완호신설(玩壺新說)”을 번역해서 연재하였으니
그 글을 참고하면 자사호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고
여기서는 간략히 몇 가지 문제만 언급하겠다.

좋은 자사호는
유사한 니료를 섞거나 색료를 사용하지 않은,
순도가 높은 원석을 일정기간 풍화작용을 거친 후
숙성된 니료를 사용해서 꼼꼼하게 잘 만들고 사용하기 편해야 한다.
차를 우리는데 사용하는 차호라면 수제품이든 반 수제품이든
성형방법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적당 불에 잘 구워내야 한다.
전통가마에서 장작불로 구우면 좋겠지만,
현재 의흥에는 장작불로 자사 차호를 굽는 곳은 거의 없다.
차와 잘 어울리는 글이나 그림의 각(刻)을 더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이다.

사용하는 자사호를 보면 그 사람의 차 생활이 보인다.
아무리 타고난 미인(美人)일지라도
평소 자신을 가꾸는데 등한시하거나
사랑받지 못한다면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자사호 역시 마찬가지로
아무리 유명작가의 비싼 차호라 할지라도
평소 진열장에 전시용으로 모셔 두거나
차를 우리더라도 잘 양호(養壺)하지 않는다면
이미 차호로써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다.

차의 종류에 따라 차호를 구분해서 사용해야하며
사용 후에는 잘 닦아서 정갈하게 관리해야한다.
설거지도 않은 채 그대로 두었다가 다시 그 그릇에 밥을 담겠는가?
억지로 양호를 하려고 진한 찻물에 삶거나
때가 낀 차호를 억지로 문질러서 광을 내는 것은
세수도 않은 얼굴에 화장만 진하게 칠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사 차호를 사용하다보면
같은 차라도 사용하는 차호의 크기나 니료에 따라 차 맛이 조금씩 다름을 알 수 있다.
어떤 니료의 차호에 어떤 차를 우려야 한다는 정설은 없다.
본인의 느낌 따라서 우리다보면 차와 궁합이 잘 맞는 차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일부 차인들 가운데는 유명 작가의 고가품만을 고집하는 분들이 있다.
물론 유명 작가의 작품은 예술품으로 소장할 가치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평소 차를 우리는 차호라면 일반적인 자사호로 충분하다고 본다.
꼭 유명작가의 작품이나 고가품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의흥을 수없이 드나들면서, 유명 작가들을 많이 만나 보았지만,
진정한 도공(陶工)의 혼(魂) 살아 있는 사람은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는 한국 도공들의 의식 수준이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차 그릇을 애기하다 보니 문득 돌아가신 토우 선생님이 그립다.
80년대 중반 해인사 다경원(茶爐經卷) 소임을 보면서 토우 선생님과 인연이 되어
종종 다기 구하러 갔었는데, 그 당시 다기 한 벌에 2만원이었다.
누가 가든, 얼마를 사든, 다구 값이 몇 년 동안 그 값이었다.
그래서 가져다 파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해인사 스님들이 단골 고객이었다.

누가 다구 가격에 대해서 물으면, 토우 선생 왈:
“흙으로 만든 건데 2만이면 됐지요. 대부분 스님들이 가져가시는데.......”

한번은 내가 그져 별 생각 없이:
“선생님 다구 절수(切水)가 잘 안되는데 물대를 좀 개량하면 어떨까요?”

토우 선생 왈:
“그림은 화가가 그리고 싶은 데로 그리는 것이지 남이 어찌 그리란다고 그렇게 그리진 않지요”

훗날 지인을 통해서 애기를 듣고 그 분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현대 차인 1세대라고 할 만한 효당 .금당. 토우선생 등
몇 분이 우리 차 문화 부흥을 위해서 애를 쓰셨는데
그 당시에는 변변한 한국 다기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토우선생께서 고심 끝에 약탕관을 모델로 삼아
만든 다구가 우리나라 현대 다구의 출발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 원형을 유지하고 싶어 하셨던 것 같다.

어찌 자사호 애기를 하다말고.......

3. 차(茶)는 차일뿐이고 호(壺)는 호일뿐이다.

제발 “얼마짜리” “몇 년짜리” 이런 소리 좀 안 듣고
그 져 있으면 있는 데로, 없으면 없는 데로
그렇게 차 마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가족들과 둘러앉아서, 벗이 오면 벗과 더불어서,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의 그림자를 벗 삼아서,
그렇게 차 마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차 마실 때만이라도
"차 마시는 이놈이 어떤 놈인고?" 하고
참 주인공을 찾아보면 얼마나 좋을꼬.......

선방(禪房) 문고리만 잡아도 삼악도(三惡道)를 면한다고 들었는데
차 한 잔만 제대로 마실 줄 알아도 삼악도는 면할 텐데
그리 믿고 따르면 얼마나 좋을꼬........

요즘 이런 저런 일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차나 한 잔 하면서 먼저 내 자신을 돌아보고
다음 주위를 살펴서 자성(自省)의 계기로 삼으려 썼는데
어찌 쓰다 보니 황설 수설 알음알이만 잔뜩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언제나 이 모양다리(相)에 집착하지 않고,
제대로 차 한 잔 마실 수 있을지.........
실은 저도 직업병인지, 아직 그걸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8년 4월 24일
북경 초의다실에서 감야(甘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