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2일 토요일

보이차 이야기 17

청병은 녹차인가?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 이야기 17

햇볕에 말리는 쇄청모차.

필자가 다니던 학교의 커리큘럼을 보면 보이차에 관한 수업은 3%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중국차는 보이차에 관한 것 일색이다. 지식은 양식(良識), 곧 좋은 지식과 나쁜 지식인 악식(惡識) 그리고 좋은 지식처럼 위장하는 허식(虛識)으로 나눠진다. 보이차는 어려운 학문이다. 특히 오늘날 정보사회에서 넘치고 있는 보이차에 관한 악식과 허식들이 보이차를 이해하는데 일정한 장애로 작동하고 있기에 보이차에 관한 지식은 더욱 혼돈한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21세기 초 전통가공법으로 만든 보이청병의 재등장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학문적으로 청병을 녹차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병은 녹차인가? 이에 대한 이해의 키워드는 살청(殺靑), 쇄청, 발효(醱酵)라는 용어에서부터 시작된다.

만약 누군가 보이차의 산지, 원료, 가공 등 3가지의 정의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가를 물어본다면 필자는 주저 없이 가공법인 ‘쇄청법’을 꼽을 것이다. 살청과 쇄청은 모두 차의 가공법의 하나이나 별개의 가공과정에서 이루어진 각기 다른 공정이다.

녹차로 예를 든다면, 첫 번째 덖음 즉 고온을 통해 찻잎 속에 산화효소의 활성을 파괴하여 발효를 억제하는 공정을 ‘살청’이라 한다. 그리고 살청 덖음 후의 건조방법 중에서 찻잎을 솥으로 건조시킨 것을 ‘초청(炒靑)’, 건조기계를 통해 말린 것을 ‘홍청(烘靑)’, 햇볕을 통해 건조한 것을 ‘쇄청’이라 한다. ''쇄''는 햇볕에 쬐어 말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학문적으로 차의 초기가공에서 생산된 반제품을 가리켜 모차(毛茶)라고 한다. 이는 곧 한국에서 말하는 초벌차이기도 하다. 녹차계열에 속해있는 보이차의 초벌차가 햇볕을 통해 말렸기에 녹차건조법의 용어인 ‘쇄청모차’를 쓴다. 그렇다면 보이숙차가 후발효차(後醱酵茶)라면 보이생차 즉 청병은 녹차인가? 이에에 대한 필자의 답은 아니다 쪽에 서있다.

이러한 학문과 배치되는 대답의 근저에는 지속적으로 개발된 신차(新茶)의 등장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차에 관한 현대용어는 20세기 초반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용어들이 새로이 만들어지고 또한 사라지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용어들은 그 개념이 시대에 따라 변천 ㆍ확장되어 전혀 다른 개념으로 새로이 탄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보이차가 등장함으로써 더욱 심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학문적으로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용어들이 상당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쇄청’과 ‘발효’에 관한 용어다.

오늘날 차의 용어개념에 관한 정의는 60년대 중국 제차학(製茶學)의 최고 권위자였던 안회농업대학(安徽農業大學) 차학과(茶學科) 故 첸촨(陳椽) 교수에 의해 최초로 정립됐다. 그의 학문적 논거에 따라 제작된 <제차학(製茶學)> 교과서에서는 쇄청 건조법을 녹차의 가공법으로 귀속하고 있으며, 이 교과서에서는 ‘햇볕을 통해 말린 쇄청모차는 모두 악퇴(渥堆)라는 공법을 거쳐 만든 후발효차인 흑차(黑茶)의 원료로 쓰이고 있다’는 정의를 두고 있다.

그 동안 쇄청녹차는 녹차의 일종임에도 불구하고 상품으로서 시장에서 거의 유통되지 못하고 대체로 반제품인 모차 즉 초벌차인 상태로 거래되고 있는 것은, 쇄청녹차의 대부분이 흑차의 원료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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