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2일 토요일

보이차 이야기 17

청병은 녹차인가?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 이야기 17

햇볕에 말리는 쇄청모차.

필자가 다니던 학교의 커리큘럼을 보면 보이차에 관한 수업은 3%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중국차는 보이차에 관한 것 일색이다. 지식은 양식(良識), 곧 좋은 지식과 나쁜 지식인 악식(惡識) 그리고 좋은 지식처럼 위장하는 허식(虛識)으로 나눠진다. 보이차는 어려운 학문이다. 특히 오늘날 정보사회에서 넘치고 있는 보이차에 관한 악식과 허식들이 보이차를 이해하는데 일정한 장애로 작동하고 있기에 보이차에 관한 지식은 더욱 혼돈한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21세기 초 전통가공법으로 만든 보이청병의 재등장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학문적으로 청병을 녹차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병은 녹차인가? 이에 대한 이해의 키워드는 살청(殺靑), 쇄청, 발효(醱酵)라는 용어에서부터 시작된다.

만약 누군가 보이차의 산지, 원료, 가공 등 3가지의 정의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가를 물어본다면 필자는 주저 없이 가공법인 ‘쇄청법’을 꼽을 것이다. 살청과 쇄청은 모두 차의 가공법의 하나이나 별개의 가공과정에서 이루어진 각기 다른 공정이다.

녹차로 예를 든다면, 첫 번째 덖음 즉 고온을 통해 찻잎 속에 산화효소의 활성을 파괴하여 발효를 억제하는 공정을 ‘살청’이라 한다. 그리고 살청 덖음 후의 건조방법 중에서 찻잎을 솥으로 건조시킨 것을 ‘초청(炒靑)’, 건조기계를 통해 말린 것을 ‘홍청(烘靑)’, 햇볕을 통해 건조한 것을 ‘쇄청’이라 한다. ''쇄''는 햇볕에 쬐어 말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학문적으로 차의 초기가공에서 생산된 반제품을 가리켜 모차(毛茶)라고 한다. 이는 곧 한국에서 말하는 초벌차이기도 하다. 녹차계열에 속해있는 보이차의 초벌차가 햇볕을 통해 말렸기에 녹차건조법의 용어인 ‘쇄청모차’를 쓴다. 그렇다면 보이숙차가 후발효차(後醱酵茶)라면 보이생차 즉 청병은 녹차인가? 이에에 대한 필자의 답은 아니다 쪽에 서있다.

이러한 학문과 배치되는 대답의 근저에는 지속적으로 개발된 신차(新茶)의 등장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차에 관한 현대용어는 20세기 초반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용어들이 새로이 만들어지고 또한 사라지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용어들은 그 개념이 시대에 따라 변천 ㆍ확장되어 전혀 다른 개념으로 새로이 탄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보이차가 등장함으로써 더욱 심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학문적으로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용어들이 상당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쇄청’과 ‘발효’에 관한 용어다.

오늘날 차의 용어개념에 관한 정의는 60년대 중국 제차학(製茶學)의 최고 권위자였던 안회농업대학(安徽農業大學) 차학과(茶學科) 故 첸촨(陳椽) 교수에 의해 최초로 정립됐다. 그의 학문적 논거에 따라 제작된 <제차학(製茶學)> 교과서에서는 쇄청 건조법을 녹차의 가공법으로 귀속하고 있으며, 이 교과서에서는 ‘햇볕을 통해 말린 쇄청모차는 모두 악퇴(渥堆)라는 공법을 거쳐 만든 후발효차인 흑차(黑茶)의 원료로 쓰이고 있다’는 정의를 두고 있다.

그 동안 쇄청녹차는 녹차의 일종임에도 불구하고 상품으로서 시장에서 거의 유통되지 못하고 대체로 반제품인 모차 즉 초벌차인 상태로 거래되고 있는 것은, 쇄청녹차의 대부분이 흑차의 원료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다음 호에 계속)

보이차 이야기 16

아프리카에서 재배한 보이차도 보이차일까?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 이야기 ]16. 정보화 사회의 허식 ①

디지털 혁명으로 시작되는 21세기를 가리켜 ‘지식 정보화 사회’라고 한다. 세계는 정보중심 세계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가정과 직장에서는 인터넷을 이용해 손쉽게 지식을 접하는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인터넷 정보의 확산은 접근성이 쉬워졌다는 순기능과 함게, 난무하는 악식(惡識)과 허식(虛識)이라는 역기능도 가지고 있다.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보이차에 관한 지식을 예로 들어보자. 당신은 보이차에 대해 어떤 정보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가? 그 정보는 어느 정도 믿을만하며 깊이가 있는가? 이치에 맞지 않는 궤변을 정보라 믿고 자신의 판단을 위태롭게 만든다면,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2002년에 제정된 보이차의 정의에 대한 키워드는 산지, 원료, 가공법이다. 산지에 대해 누군가가 “운남 대엽종 종자를 아프리카나 미주에서 재배한다면 그것은 보이차가 아니란 말인가?”되묻곤 한다. 이에 대해 필자의 답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왜 안 된다는 것인지를 과학적으로 풀어보도록 하겠다.

운남 지역은 차나무의 원산지로 지금도 야생 차나무들이 즐비하게 있는 곳이다. 이곳은 빙하기일 때도 생태계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을 정도도 야생식물들이 원시상태로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구상에서 우리가 보이는 차나무의 형태는 교목형, 반교목 그리고 관목형으로 나뉘어져 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종류의 차나무들을 별개로 생각하고 있으나 연구에 따르면 교목형이든 관목형이든 차나무의 세포 속에는 모두 30개의 염색체가 있다. 이는 곧 두 가지 형태의 차나무일지라도 하나의 종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에 학문적으로 차나무 형태 중 교목은 원시형, 관목은 진화형, 반교목은 과도형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관목형 차나무들은 모두 교목형에서부터 진화된 차나무라는 것이다.

위도가 낮은 남쪽 열대지방에서는 잎으로 전달된 아미노산 성분이 떫은맛을 내는 폴리페놀로 전환되기 때문에, 감칠맛이 부족하고 떫은맛이 강하다. 이러한 원료로 녹차를 만들 경우 품질이 떨어지기에 발효차를 만드는 것이 적합하다. 이와 반대로 온도가 낮은 북쪽 한랭지역의 차나무는 질소화합물의 합성과 축적작용이 유리하기에 아미노산, 카페인등 질소함유물질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이에 차나무의 뿌리에서 흡수된 아미노산 성분이 줄기를 통해 잎에서 분해되지 않고 축적되어 차의 맛 중 감칠맛이 많아져 녹차를 만드는데 적합하다.

연구에 따르면 같은 품종의 차나무일지라도 위도에 따라 화학성분의 함량도 차이가 난다. 이런 시험이 행해진 적이 있다. 운남성 맹해에서 자란 저엽종을 절강성 항주에 심었더니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동사(凍死)했다. 그러나 주위의 사천(四川)지역에서 일정 기간 심어 추위에 대한 내성을 기른 후 다시 항주에 옮겨 심었더니 동사되지는 않았으나 나무와 잎들이 왜소화(矮小化)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같은 뿌리의 차나무에서 자란 찻잎일지라도 맹해와 항주에서 자란 찻잎의 성분은 확연히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위도가 낮은 남쪽 맹해의 찻잎에서는 폴리페놀, 카테킨 등 내용물들이 항주에 비해 월등이 높았고, 이와 반대로 아미노산과 카페인 등 질소화합물들의 함유량은 항주의 찻잎에 많이 나타난다. 이는 보이차의 원료로는 맹해의 찻잎이 적합한 반면 항주의 찻잎은 녹차를 만드는데 적합하다는 과학적 결과이기도 하다.

이것이 왜 같은 차나무일지라도 다른 지역에서 자란 찻잎으로 보이차를 만들 수 없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다.

보이차 이야기 15

현대보이차의 정의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 이야기 15

보이차의 명성이 1990년대 해외에서 떠오르자 생산지인 중국 운남에서도 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의 참여 아래 학자들이 움직였고 보이차의 역사, 과학들이 속속 밝혀진 것이 20세기 말이었다. 21세기에 들어와 ‘짝퉁 보이차’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보이차의 명칭에 대한 왜곡 또는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2002중국보이차국제학술연토회’에서 각국 차전문가들이 모여 “보이차는 세 가지 선결 조건들이 뒤따라야만 ‘보이차’라 부를 수가 있다”는 결론을 지었다. 즉 보이차에 관한 지역, 원료 그리고 가공법에 관한 정의다.

1) 운남지역(雲南地域)

보이차의 찻잎 원료는 반드시 운남지역에서 생산된 것이어야만 한다. 보이차의 주요 산지는 오늘날 서쌍판납(西雙版納)과 사모지구(思茅地區)에 있으며 특히 란창강(瀾滄江) 유역이 그 중심지이다. 서쌍판납의 차밭은 란창강(瀾滄江) 양쪽의 고산구릉(高山丘陵)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적 요소들은 찻잎 속의 화학물질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이는 보이차의 역사과 정통의 맥이 바로 운남지역에서 비롯되는 것을 시사한다.

란창강 유역의 대엽종 찻잎.

2) 운남대엽종(雲南大葉種)

운남차과학연구소(雲南茶科學硏究所)에서 운남대엽종과 소엽종의 내용물의 함량에 대해 비교 측정한 자료에 의하면 대엽종에서의 차침출물(茶浸出物)은 소엽종보다 3%가 높으며, 특히 폴리페놀(Polyphenol)은 소엽종보다 5~7%, 카테킨(catechins)의 측정은 소엽종보다 30~60% 높게 나타났다. 이는 곧 대엽종으로 만든 보이차가 오래 묵으면 묵을수록 묵은 향기가 배어날 수 있는 원인으로 규명되었다.

3)쇄청모차

보이차의 1차 공정은 녹차와 같다. 단 건조방법은 일광건조를 통해 말린 쇄청차이어야 한다. 보이차의 원료인 쇄청모차는 다른 녹차와는 달리 함수량이 일반표준보다 높아 약 9~12%에 달한다. 쇄청모차는 장시간의 햇볕을 이용한 건조로 인해 녹차의 클로로필(엽록소) 성분 중의 마그네슘 이온이 떨어져 페오피틴으로 변하게 되어 엽색이 어두워지기도 한다. 또한 10% 이상의 높은 함수량은 산화 효소들이 작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결과가 초래되어 보이차의 후발효(後醱酵) 중 성분변화가 일어나는 데에 있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곧 찻잎이 산화되지 않도록 단시간 내에 건조품으로 만들어낸 초청법(炒靑法)이나 홍청법(烘靑法)에서 얻어질 수 없는 효과이기에 보이차의 건조는 필히 햇볕을 통해야만 진정한 보이차 맛을 얻을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쇄청차는 엄밀히 말해 다른 녹차와는 달리 찻잎의 상당부분이 산화되어 있는 녹차이다. 물론 쇄청모차는 직접 우려 마실 수도 있으나, 녹차로서의 상품가치가 별로 없기에 주로 정제 후 재가공하여 1차적으로 미생물을 통해 만든 숙차(熟茶)를 만들거나 혹은 재차 압제하여 숙병(熟餠)으로 만들다. 또는 쇄청차를 원료로 하여 곧 바로 긴압차인 청병(靑餠)을 만들어 저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결론은 소엽종 찻잎 원료로는 보이차를 만들 수 없으며, 운남 이외 지역의 찻잎으로 만든 보이차는 역시 ‘짝퉁 보이차’로 분류되는 것이다. 특히 건조부분에 있어 햇볕 아닌 방법으로 찻잎을 건조할 경우 보이차의 후발효 작용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에 보이차의 건조는 필히 햇볕을 통해야만 훗날 바른 보이차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이다.

보이차 이야기 13

칠자병차 속의 숫자보이차 ②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 이야기13

‘숫자보이차’의 어려움은 상품포장지 그 어느 곳에도 숫자에 관한 정보가 표기되어 있지 않는데 있다. 사실 숫자보이차의 탄생은 해외 시장인 홍콩을 겨냥한 상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이차의 포장은 357g×7편을 한 통에 담아, 12통을 대광주리에 담는 것이 전통포장법이다. 이때 상품의 출처를 알리는 전지를 만들어 대광주리에 한 장 넣은 것이 당시 유통의 관리 형태였다. 보이차 시장에서 이 전지를 가리켜 지비(支飛)라고 한다.

보이차의 지비 내용.

지비(支飛)에는 차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데, 상품명칭, 출고공장, 중량 특히 우리가 언급하고 있는 소위 칠자병차의 레시피 즉 7572, 7542 등과 같은 문구가 바로 이 ‘매두'란에 적혀있다. ‘매두’라는 단어는 중국의 표준어가 아닌 홍콩, 광동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는 외래어 즉 영어인 ‘Mark’의 홍콩식 표현이다. 지비에서 매두(Mark) 문자의 삽입은 칠자병차의 출생이 홍콩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였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처럼 칠자병차에 관한 정보는 결국 광주리를 통째로 구매하지 않는 한 개별포장으로 된 보이차의 포장지만으로는 그 어떠한 정보도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는 차에 관한 정보는 도매상들에게만 알려줄 뿐 소비자들은 상인들의 입에만 의지하는 이상한 유통구조로 변질되어 결국 ‘짝퉁 보이차’가 창궐하는데 일조하게 된 것이다.

보이차의 정보 부재는 소비자들에게 많은 혼란을 야기했다. 일부 보이차 애호가들, 특히 타이완의 마니아들이 칠자병차의 포장지들을 비교분석하는 작업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들은 수 십 종에 달하는 포장지의 재질, 인쇄명도, 글자의 차이점 등을 정리해 이를 토대로 소비자들에게 칠자병차의 진위에 관한 판별법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부분은 아래와 같다.

칠자병차의 포장지에는 둥근 원을 중심으로 상단에는 ‘운남칠자병차(雲南七子餠茶, 영어병기)’ 중앙에는 ‘팔중차(八中茶)’ 로고 그리고 하단에는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운남성차엽분공사(中國土産畜産進出口公司雲南省茶葉分公司, 영어병기)’ 등의 글자가 적혀 있다. 인쇄에서 판별할 수 있는 자료로는 상단 ‘운남칠자병차’에서의 ‘운(雲)’자와 ‘차(茶)’자의 상이점, 하단 ‘중국토산’부분에서 인쇄된 ‘중(中)’자의 크기 그리고 ‘팔중차’ 로고의 ‘차(茶)’자의 색상, 내비(內飛)에 인쇄된 ‘서쌍판납태족자치주맹해차창출품’라는 문구에서 ‘주(州)’자와 ‘출(出)’자의 차이점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내표(內票)의 대소(大小) 크기와 ‘인진배방(認眞配方)’라는 문구를 특별히 추가하여 편집한 내표 등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차성(茶聖)이라 불리는 육우(陸羽)는 <다경(茶經)>에서 이러한 말을 남겼다. “무릇 차의 좋고 나쁨은 오직 구전비결에 있다(茶之臧否存於口訣).” 그는 750년대에 “표피적이 아닌 차의 장ㆍ단점을 함께 논하고 감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차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이에 몇 가지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전문가 대접을 받을 수 없으며 오직 구전비결에 따라 부단히 지식을 연마해야만 진정한 차 전문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라고 전한 바가 있다.

보이차의 지식과 정보를 공부하는데 있어 첩경 즉 지름길은 없다. 진정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부단히 보이차의 과학, 역사를 연마 그리고 연구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 말은 보이차의 진위 판별법에 있어 포장지에서 나타난 여러 사안들은 결국 곁가지에 불과한 참고사항이라는 뜻이다. 육우의 일침은 오늘날의 보이차에도 유효하며 보이차 애호가들에게 많은 것을 사색케 하는 대목이다.

보이차 이야기 11

보이차 속의 칠자병차 ③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 이야기 11

운남성 정부가 ‘운남성보이차제조공법시행규칙’을 1979년에 이르러 발표한 것을 보면 쾌속발효공법이 비록 1973년 곤명차창에서 개발됐으나 기술상의 제반 문제들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여러 해의 시험을 거쳐 비로소 정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보이차의 쾌속발효공법의 개발에 대한 일화는 수없이 회자되어 시중에 나돌고 있다. 사실 이러한 개발의 정확한 시기마저 불투명한 것도 사실이다.

일화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1973년(일설은 1974년), 운남성차엽진출구공사(雲南省茶葉進出口公司)의 부경리 송문경(宋文庚)과 오기부(敖其富)씨가 중국차무역박람회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전시장에서 얻은 광동지역에서 만든 지금과 같은 유사한 보이차 샘플을 가지고 당시 곤명차창(昆明茶廠) 공장장인 이희금(李希金)씨에게 보여줘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느냐고 제안했다.

이 창장이 오계영(吳啓英, 2005년 작고)을 불러 샘플을 살펴본 결과 차의 외형이 튼실하고 색은 흑갈색이었으며 등급은 9~10급 정도의 쇄청모차로 만든 것 같았다. 당시 곤명차창에 마침 400톤 정도의 9~10급의 청모차(靑毛茶) 즉 쇄청모차가 창고에 쌓여있어 처리하는데 골칫거리였을 때였다. 이 원료는 청전, 즉 오늘날의 생전의 원료로 사용될 계획이었다. 창고 내에 있는 원료를 소화하는데 더할 나위가 없는 이 제의는 곤명차창으로 하여금 보이차의 미생물발효를 제작하는데 있어 시험용 원료로 삼도록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미생물공법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그들은 보이차 샘플로 만든 것으로 되어 있는 발수차(發水茶)의 근거지인 광동지역에 맹해차창의 추병량(鄒炳良)과 동행하여 학습한 후 개발한 것이 열발효(熱醱酵)였다. 열발효란 쇄청모차 원료에 수증기를 가해 일정한 시간을 통해 산화시켜 모차의 외형을 흑갈색으로 만드는 공법을 말한다. 이 공법을 수차례 실습하여 개발한 것이 바로 쾌속발효인 미생물발효공법이다.

미생물발효의 보이차를 만드는 1차 공정은 녹차와 같다. 다만 사용하는 찻잎 원료는 대부분 함수량이 적은 쇤 찻잎이기에 먼저 10% 정도의 물을 뿌려 찻잎의 함수량을 높인 후 녹차와 같이 솥의 고온을 빌려 찻잎 속에 있는 효소 성분을 억제시켜 발효가 일어나지 않도록 살청(殺靑)이라는 공정을 한다. 이어 비비는 유념과정을 거쳐 세포조직을 약 15~30%를 파괴시키는 동시에 찻잎을 줄기 모양으로 만든다. 유념된 찻잎을 햇빛 아래에 건조해 함수량이 10%정도가 되도록 하는데 이렇게 1차적으로 만들어진 반제품의 차를 가리켜 모차(毛茶), 또는 쇄청모차라고 한다.

쇄청모차를 악퇴(渥堆, 미생물발효)의 공정을 거쳐 만든 것이 ‘쾌속발효보이차’다. ‘악퇴’ 공법이란 물과 습열 등의 작용으로 인해 생긴 미생물들이 촉매작용을 일으켜 찻잎속의 화학물질들로 하여금 산화, 분해 등의 일련적인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한다. 악퇴 또는 퇴적이라고 하는 과정은 주로 곰팡이에 의한 호기성(好氣性)발효로 이루어졌는데, 호기성발효란 미생물들이 산소를 좋아하여 공기 속에서 잘 자라는 성질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보이차일 경우 다섯 검체에서 Aspergillus속 15종, Penicillium속 4종이 분리되는 것으로 보아 보이차의 주요한 미생물이 곰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로 40~60일 정도이면 발효의 공정을 마치며 완성한 잎차를 가리켜 보이산차라고 하나 상업적으로는 보이숙차라고 한다. 수증기를 통해 압제한 것을 긴압차(緊壓茶) 혹 압제차(壓制茶)라고 하며 학술적인 명칭은 긴압보이차라고 한다. 모양에 따라 둥근 것은 숙병(熟餠), 벽돌모양은 숙전, 그릇처럼 생긴 것은 숙타라고 한다.

보이차 이야기 10

보이차 속의 칠자병차 ②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 이야기 10

제3세대보이차, 현대보이차 또는 숫자보이차라고도 일컬어지는 칠자병차의 탄생은 미생물발효공법에서 비롯되었다. 미생물발효공법을 인공발효 또는 쾌속발효라고도 부른다.

1973년 미생물을 통해 쾌속발효시킨 미생물발효보이차의 등장은 보이차의 기존 생산방식뿐만 아니라 유통시장 질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인위적인 고온다습한 공간을 통해 배양한 미생물의 작용은 찻잎의 산화를 가속화시켰으며 이러한 공법을 가리켜 학계에서는 ‘후발효작용(後醱酵作用), Post-fermentation’ 또는 ‘악퇴변색(渥堆變色), Pile-fermentation’이라 부르기도 했다.

미생물발효보이차에 대해 중국정부 당국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1979년 운남성 정부가 발표한 ‘운남성보이차제조공법시행규칙’에 관한 시행령이다.

“보이차란 운남성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든 녹차긴압차(綠茶緊壓茶)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찻속에 함유되어 있는 여러 효소 성분들, 특히 폴리페놀 중심으로 자연발효 되어 차색이 변하는 동시에 색다른 맛과 향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차의 변화는 오래 묵힐수록 그 향미를 더욱 느낄 수 있는 것이 보이차의 진가다. 보이차의 자연발효는 당시의 사회적 배경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폐쇄적이고 낙후된 운남성의 교통망에 의한 장기간의 운송기간에서 온 발효였다.

오늘날은 운남성의 교통이 발달되어 1년이 소요됐던 운송을 단 며칠 혹은 몇 시간 안에 이룰 수 있게 됐다. 이에 지난날 운송수단에서 비롯된 자연발효의 맛과 향을 재현하기 위해 우리는 ‘보이차쾌속발효가공법’을 개발하여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하고자 한다. 쾌속발효가공법이란 물과 습도에 의해 인위적으로 발효한 가공법으로서 1975년 곤명차창(昆明茶廠)에서 생산한 후 점차적으로 맹해, 하관(下關), 보이차창 등으로 확산되었다. 그동안의 가공법에 나타난 여러 난제들을 완벽하게 극복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이 얻어 이제 운남 각 지역의 차공장에서도 보이차를 생산하고 있는 실태이다. 이에 운남성정부는 보이차 품질의 제고를 보다 유효하게 관리하기 위해 아래 같은 시행령을 반포한다.”

이것이 ‘운남성보이차제조공법시행규칙’에 관한 시행령의 모두(冒頭) 내용이다. 모두 내용 중 보이쾌속발효공법이 개발된 시기는 1975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일반적으로 1973년 곤명차창에서 개발됐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있다. 보이차쾌속발효공법이 1973년에 개발됐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은 <운남성차엽진출구공사지雲南省茶葉進出口公司誌>의 ‘보이차발효공법 및 설비개혁시험’에서다.

그러나 내용 중 “1973년부터 곤명차창은 쾌속발효공법을 개발하였으나 대체로 경험을 통한 생산방법으로 진행되었다. 과학적인 데이터의 부족은 결국 발효과정 중 찻잎 변화에 대한 관찰 및 찻잎 성분에 대한 변화를 파악하는데 미흡하였고 또한 획일적이지 못한 발효주기(醱酵週期)와 열악한 설비로 인해 보이차의 생산방식은 무척 낙후된 상태였다”라는 부연설명을 보아 소위 숙병(熟餠)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미생물발효보이차 즉 칠자병차의 상품화는 1975년 이후부터 시작된 일이라 볼 수 있다

보이차 이야기 9

보이차 속 칠자병차①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 이야기 9

칠자병차의 유래는 골동보이차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운송수단인 마필이 하중을 견딜 수 있는 60kg의 무게와 수송 길이었던 다마고도(茶馬古道)의 통행여건에 의해 둥근 보이차의 무게는 357g로 정해졌다. 이때 보이차의 총칭은 보이원차(普洱圓茶)라 했으며, 개별 상점에서 만든 보이차는 모두 자신들의 상호에 따라 이름을 달리했다.

오늘날 병차(餠茶)와 원차(圓茶)를 같은 의미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나,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서로 다른 재질의 보이차로 존재했다. 당시 상인들은 보이차의 품질을 두 가지로 나눠 만들었는데, 고급 찻잎으로 잘 만들어진 둥근 차를 ‘원차’라 하여 주로 해외시장에 판매한 반면 하등급 찻잎으로 만든 것은 ‘병차’라 하여 판매대상은 주로 서역지역이었다. 즉 둥근 모양은 같으나 원료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 것이다.

공산중국 치하 아래 처음 만든 둥근 보이차 곧 인자보이차의 포장지를 보면 ‘중차패원차(中茶牌圓茶)’라는 글귀가 있다. 글자에서 알 수 있듯 고급 찻잎으로 만들었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 원차이다.

지금 우리가 시중에서 접하고 있는 둥근 형태의 보이차는 대부분 칠자병자다. 칠자병차는 보이원차의 전통 포장법과 같이 7편을 한 죽통에 담았다. 칠자병차의 이름에 대해 예로부터 여러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운남의 민족문헌에 따르면 ‘칠자(七子)’란 ‘다복다손(多福多孫)’의 의미며, ‘병차(餠茶)’는 둥근 모양의 보이차를 가리킨다고 적혀있다.

‘칠자병차’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인쇄물로서 등장하게 된 해는 1973년부터다. 이는 문화대혁명 때인 1972년에 그동안 ‘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中國茶葉公司雲南省公司)’라 불렸던 회사의 이름을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운남성차엽분공사(中國土産畜産進出口公司雲南省茶葉分公司)’로 개명한 후 비로소 포장지의 인쇄물에 ‘칠자병차(七子餠茶)’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흔히 보이차의 시대적 흐름을 고대와 현대로 나누는데, 그 가름의 잣대가 바로 1973년이다. 1973년은 보이차의 역사에 있어 한 획을 그었던 해다. 회사 이름을 바꾼 것을 비롯해 자체적 수출업무기능의 실현 그리고 미생물발효의 탄생 등 굵직한 사건들이 모두 이 해부터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고대보이차와 현대보이차의 차이는 발효에서 나타난다. 고대보이차의 발효는 자연산화에서 비롯된 것이며 현대보이차의 발효는 미생물로 이루어지는 것이 다르다. 고대보이차는 다시 골동보이차 즉 호자급(號字級)보이차와 인자급(印字級)보이차로 나뉘지만 모두 자연발효에서 진화(陳化)된 상품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골동보이차를 제1세대, 인자보이차를 제2세대 그리고 현대보이차 즉 1973년 이후의 보이차를 제3세대 보이차라 부른다.

제1세대 보이차는 이무(易武)의 개인상점에서 만들어졌던 반면 제2세대와 제3세대 보이차는 모두 국영 맹해차창을 중심으로 생산된 제품이다. 그리고 지금 보이차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신제품들을 가리켜 제4세대 보이차라 부르고 있다.

제3세대 보이차 즉 현대보이차의 또 다른 이름은 숫자급보이차라고 한다. 시장에서 이를 ‘숫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호자급과 인자급의 명칭에 관한 흐름을 일관성 있게 맞추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미생물발효의 탄생을 기점으로 보이차 출하공장을 곤명공장(昆明)은 1번, 맹해공장은 2번, 하관공장(下關)은 3번이라고 지정하여 제품을 관리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보이차 이야기 8

보이차 속의 광운공병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 이야기8

누군가 철관음(鐵觀音)이 부드러운 새색시 같다면 보이차는 강력한 남성을 상징한다고 비유한 적이 있다. 바로 이러한 강인하고 중후한 보이차 맛이 세계 차인들의 혀를 단숨에 사로잡아 어느덧 보이차는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차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어찌 보면 보이차가 근세기에 들어와 이렇게 웅비(雄飛)할 수 있는 것은 홍콩, 마카오, 타이완 등지의 상인들이 그 중심자리에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특별한 맛’을 상징하는 보이차를 더 매혹적이고 화려해 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상술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중국 내의 보이차 소비시장은 티베트, 몽고, 위구르 등 서부소수민족지역이었으며, 해외의 주요시장은 홍콩과 마카오였다. 영국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인 홍콩과 마카오는 자유무역과 항만기능을 이용하여 세계의 물류중심지로 각광을 받은 것은 50년대의 일이었다. 당시 이곳은 수많은 보세창고가 있었으며 여기에 필요한 하역 인부의 수는 상당했다. 이들이 해갈용으로 마시는 차는 대부분 부담 없이 주전자에 끓여 마실 수 있는 값싼 육보차(六堡茶)와 보이차였다.

공산중국 초기의 차 수출에 관한 업무는 주로 상해시와 복건성의 하문(厦門) 그리고 광동성의 광주(廣州)의 수출입공사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운남에는 세관의 검사를 거친 수출입화물에 대해 관세를 납부하고 면장을 발급받는 통관허가증이 없어 보이차에 관한 수출은 모두 중국광동성차엽진출구공사(中國廣東省茶葉進出口公司)에서 도맡아 대행해주었다. 기록에 의하면 소위 인자보이차의 수출은 대부분 이 경로를 통해 홍콩과 마카오로 갔다.

광동에 있는 차엽진출구공사는 운남보이차에 관한 수출 건만 담당할 뿐만 아니라 운남에서 보이차 원료를 공급받아 자체적으로 이윤을 창출하기도 했다. 이 기관은 수출통관을 무기로 삼아 운남에 보이차 원료를 요구했던 것이다. 이에 운남에서는 부득이 매년 수 백톤의 보이모차(1차 가공된 반제품 잎차)를 이곳에 공급하게 되는데, 이러한 조달관계는 1973년 운남 자체에서 자영(自營)으로 수출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광동지역은 예로부터 자체적으로 차를 만들었다. 물론 주 판매지역은 홍콩과 마카오였다. 그들은 광동의 찻잎, 심지어 월남의 찻잎(越南靑)을 가져와 차를 만들었으나 반응이 좋지 않자, 운남 찻잎(雲南靑)의 가치를 최대한 이용하여 잎차인 산차(散茶) 그리고 보이원차와 같은 병차(餠茶)를 만들어 홍콩 등지에 팔았다. 시장에서 이 병차를 가리켜 광동병(廣東餠)이라 한다.

광동병의 내비(內飛)는 인자보이차의 ‘팔중차(八中茶)’를 본떴으나 포장지 없이 7편을 쌓은 형식은 골동보이차와 같다. 죽순껍질로 포장하여 홍콩 등지에 팔았는데, 반응은 꽤 괜찮았다고 한다. 금속틀로 압제해 운남의 것 보다 단단했으나, 운남 찻잎을 이용했다는 것으로 일정한 고객을 확보할 수가 있었다. 물론 운남이 아닌 광동에서 만들어진 제품이었기에 운남보이차보다는 몇 갑절 싸게 유통되었다.

오늘날 시장에서 연도 있는 보이차 중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차가 바로 이 ‘광동병’이다. 광동병은 1990년대에 들어와 상인들의 각색으로 ‘광운공병’이라는 이름으로 환골탈퇴하게 된다. ‘광(廣)’은 광동지역에 만들었다는 뜻, 운(雲)은 원료가 운남의 것, 공병(貢餠)은 조공으로 바칠 만큼 질이 좋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용어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광운공병의 ‘짝퉁’이 많다는 것이다. 짝퉁 보이차란 아래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에만 해당되면 성립된다. 하나는 보이차의 상표 또는 제작연도를 속이는 것, 다른 하나는 보이차의 산지원료를 속이는 것. 여기서의 ‘보이차 원료’란 운남지역에서 생산된 찻잎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운남 이외의 지역에서 난 찻잎은 보이차의 모양을 흉낼 수 있어도 보이차의 진미(眞味)를 재현할 수 없기에 짝퉁이라 부른다.

지금 시중의 짝퉁 보이차는 ‘광운공병’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1973년, 운남에서 자체적으로 수출업무의 기능이 생기자 광동이란 지역적 이용가치가 떨어져 보이차의 원료공급을 중단시켰다. 이에 73년 이후 만든 모든 ‘광운공병’의 원료는 운남의 것이 아니기에 전부 짝퉁으로 분류된다. 만약 당신이 가지고 있는 보이차는 어느 지역의 찻잎으로 만들어졌는가?운남인가 아니면 광동 또는 동남아의 찻잎인가. 그 판단의 가름선이 바로 1973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보이차 이약 7

보이차 속 인자보이차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 이야기7

보이차가 오늘날까지 신드롬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인자보이차의 공이 절대적이다. ‘인자(印字)’란 보이차 겉 포장지에 글자를 인쇄했다는 뜻이다.

사실 앞서 출하됐던 골동보이차에는 포장지 자체가 없었다.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진 골동보이차는 보이원차라고도 하는데, 한 편의 중량은 7량 곧 지금의 357g이었으며, 7편을 한 죽통에 담았다. 대체로 찻잎을 증기로 가공할 때 차상점들이 자신들의 상호와 제품에 관한 내용을 작은 종이에 새겨 찻잎과 함께 압제하였으며, 이러한 종이를 가리켜 ‘내비(內飛)’라고 한다.

제품포장을 보면 죽통으로 싼 7편의 푸얼원차에는 포장지가 없었고, 다만 7편의 푸얼원차를 죽순으로 마무리 포장할 때 상호를 가리키는 도안 및 문구를 인쇄한 큰 종이 곧 ‘내표(內票)’를 7편 중 최상단의 원차 위에 깔아 출하한 것이 이들 개인 차상점들의 공통된 포장법이다.

내비와 내표는 모두 차상점의 선전물로 사용됐으며 때로는 차의 진위를 살피는 징표로 이용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만약 당시 보이차에 이러한 내비와 내표 마저 없었다면 보이차의 역사는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근거 없는 제품은 생명력이 결여되기 마련이며, 자생력 없는 상품은 소비자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보이차가 겉 포장지로 쌓이기 시작한 것은 1952년 때부터이며, 중국이 공산화된 후 3년만의 일이다. 사유재산제(私有財産制) 대신에 재산의 공유를 실현시킴으로써 계급 없는 평등사회를 이룩하고자 하는 중국공산당정부의 이상이자 신념이다. 그 일환으로 차를 관장하는 각 지방의 국영회사의 이름을 바꾸는 동시에 중국차를 대표할 수 있는 심벌마크를 정하기에 이르렀다.

1950년 보이차를 관장하는 회사는 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中國茶葉公司雲南省公司)로 개명되었고, 이듬해인 1951년 조승후(趙承煦)라는 사람이 설계한 도안인 ‘팔중차(八中茶)’가 중국 내의 모든 차상품의 공식로고로 등재된다. 상표 등록된 이 도안은 8개의 붉은 ‘중(中)’자로 둥글 원을 만들고 그 중앙에 녹색 ‘차(茶)’자를 새긴 마크로 되어있다. 여기서의 ‘중’자는 중국을 말하고, ‘팔(八)’이란 발(發)의 음을 빌려 발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색상에 있어 ‘중’자를 붉은 색으로 택한 것은 공산당의 상징적 빛깔과 길상(吉祥)이라는 뜻을 내포되어 있고, ‘차’자를 녹색으로 쓴 것은 찻잎의 원색에서 비롯된 발상이다.

‘팔중차’ 로고가 탄생된 후 보이차는 모두 개별 포장되어 출하됐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개인 차상점 곧 무포장지 보이차 제품의 근거지가 이무(易武)였다면 공산화 이후 국영업체의 포장지 있는 보이차 제품의 중심지는 맹해였다는 점이다. 중국의 공산화는 보이차에 있어 포장지의 유무를 가늠케 하는 하나의 기점이 된 것이다.

인자를 대표하는 보이차로는 홍인(紅印), 녹인(綠印), 황인(黃印) 등 제품이 있으나, 대체로 홍인과 녹인을 주 대상으로 삼는다. 이러한 명칭은 출시 때에서 비롯된 이름이 아니고 후일 시장상인들에 의해 붙여진 상품이름이다. 그냥 보이원차로 출하됐던 차를 어째서 색깔로 새로이 분류되어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일까? 그 연유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쇄상의 오류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50년대 초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생산되었던 인자급 보이차의 포장지에는 사실 2가지 색상밖에 없다. 팔중차 로고 중 ‘차(茶)’자만 녹색으로 될 뿐 남은 글자는 모두 붉은 색으로 인쇄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에 출하된 보이원차 상품에서 ‘차’자를 비롯해 포장지 전체를 붉은 색으로 인쇄했던 것은 당시의 낙후된 인쇄기술과 작업자의 나태한 자세에서 비롯된 합작물이다.

이러한 잘못된 포장지의 인쇄는 몇 년 동안 지속되었고, 이때의 상품을 후일 ‘홍인’이라 명하게 된다. 이후 포장지의 ‘차’자를 원안대로 녹색으로 인쇄하게 되는데, 이 제품을 ‘녹인’이라 불렀고, 이어 잉크 배합비율의 실수로 인해 ‘차’자가 노란색을 띈 것을‘황인’이라 했다. 그리고 홍콩의 상인들이 붙인 ‘녹인’이라는 이름이 타이완 사람에게 건너가‘남인(藍印)’으로 불리어 또 한 차례 변신하게 된다.

홍인과 녹인의 차맛은 다르다. 또한 인자급이라도 인쇄지와 글씨체에 따라 여러 가지의 맛이 배어난다. 이는 찻잎은 농작물이기에 해마다 품질이 같을 수가 없고 찻잎의 원료와 배합비율에서 생긴 차이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이차 이야기 6

보이차 속의 골동보이차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 이야기6

보이차의 흥망은 청나라 왕조의 성쇠에 따라 운명을 같이했다. 조선의 문고(文藁)에서도 보이듯 보이차의 명성이 가장 조명을 받은 때는 청나라 중기부터 후기까지였다.

만주족이 지배했던 청나라가 1911년에 망하자, 쑨원(孫文)을 중심으로 새로이 구성된 한족의 나라 중화민국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 40년간 중국은 일본과의 전쟁, 내전으로 인해 극심한 피폐에 시달린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변방에서 생산된 보이차가 중앙에 공급되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되었고, 결국 보이차는 중앙지배계층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지는 운명을 맞게 된다. 이것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보이차’란 이름조차 모르고 지내야 했던 역사적 배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운남 현지의 보이차 생산은 위축되지 않았다. 비록 중앙에서의 시장은 잃었으나 광활한 티베트, 위구르, 몽골 등 서역(西域)의 소수민족들이 주 소비층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광대한 서역시장의 수요는 보이차의 생명력에 더욱 활기를 불어넣었고, 보이차를 취급하는 상점 또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상인들은 보이차를 두 가지 품질로 나누어 만드는데, 서역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것은 하등급 찻잎으로 만든 긴차(緊茶) 혹은 병차(餠茶)였으며 수유차의 원료로 쓰였다. 고급 찻잎으로 잘 만들어진 산차(散茶)와 원차(圓茶)는 주로 해외시장으로 나갔다.

당시 운남성 보이차의 찻잎은 오늘과는 달리 모두 야생종이었으며, 차나무는 교목(喬木) 혹은 반교목(半喬木)이었다. 당시의 보이차는 찻잎을 덖어 숨을 죽여 비빈 후 햇볕으로 말린 방법 즉 전통가공법으로 만들었다. 또한 야생 찻잎은 일반 찻잎과는 달리 카테킨의 함량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아미노산, 당류 등의 성분이 상대적으로 높기에 카테킨의 떫은맛을 상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달리 보이차를 생차(生茶)로도 마실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때의 원료가 야생 찻잎이었기 때문이다.

보이차의 생명력은 생차뿐만 아니라 묵힘으로써도 나타난다는데 그 매력이 있다. 이러한 장점은 보이차를 저장 가능케 하는 직접적 동기가 되었고, 생차와 묵은 차등 두 가지 형태로 상품화하게 된다. 보이차는 묵을수록 생기는 독특한 맛이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자 차상점들은 순환판매(循環販賣)방식을 택하여 매년 새로 만든 보이차는 창고에 저장해두고 묵은 보이차를 연도에 따라 값을 매겨 거래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했다. 물론 운송 또는 보관해야하는 차는 증기 압력을 주어 덩어리로 만들어 통풍이 잘되고 서늘한 창고에 저장하였다.

당시 보이차를 취급하는 상점의 집합지는 이무(易武)였다. 이무는 소위 찻잎이 좋다는 6대차산(六大茶山)에 있었고, 유락(攸樂), 혁등(革登), 의방(倚邦), 망지(莽枝), 만단, 만철(曼撤) 등 6대차산을 가리켜 통상 ‘이무차구(易武茶區)’라고도 부른다. 대표적인 차 상점인 복원창(福元昌), 동경호(同慶號), 경창호(敬昌號), 동창호(同昌號), 송빙호(宋聘號) 등이 모두 이곳에 가게를 열어 부를 쌓았다. 그러나 이곳에서 발생한 돌림병(瘟疫)은 보이차의 상업근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무에서 발생한 돌림병의 파장은 운송수단인 마방(馬幇)까지 미치게 됐는데, 각지의 마부들이 전염병이 두려워 이곳 출입을 거부하는 사태는 이무 차산업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에 과거에 아주 빈번하게 왕래했던 마방들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보이차 상점들도 잇달아 휴업하게 된다.

공산중국의 등장은 개인 상점마저 허용하지 않는 정책 아래 이무의 보이차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해 그 화려했던 영화(榮華)를 접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산물이라 여긴 옛 보이차는 문화대혁명 때 모두 불태워졌고, 그 나마 지구상에 남아 있는 것은 모두 50여 년 전 다마고도(茶馬古道)를 통해 동남아를 거쳐 홍콩 상인들 손에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희소가치가 있거나 유서 깊은 기물(器物) 또는 서화(書畵) 등의 미술품을 가리켜 골동품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골동품이라 불리는 ‘골동보이차’. 한 편 먹을 때마다 가치가 배로 뛰어 어느덧 호가(呼價)는 있어도 거래가 없는 골동 중의 골동으로 보이차 마니아로부터 추앙받고 있다.